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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어준 생각의 끈

포르투갈의 높은 산 (The High Mountains of Portugal)

 저자: Yann Martel

 

오래전 대학교 새내기 때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읽고 마법 같은 스토리텔링에 신선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소설은 실제로 있음 직한 일들을 서술하는 것이라 배운 국문학도에게 얀 마텔이 선사한 있음 직한 일은 꿈의 세계를 배회하는 일처럼 느껴져 더욱 독특하게 느껴졌었다. 20년이 훌쩍 넘은 후, 영화로 만들어진 파이 이야기를 감상하며 옛 생각에 젖은 후, 그의 다른 책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른 책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다. 고백건대 영화로 만들어진 파이 이야기는 결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훔칠 정도로 훌륭했지만, 세월이 지나서인지 내가 상상했던 꿈같은 세계가 조금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 슬펐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대한 나의 기대는 시작 전부터 어느 정도 정제가 되었다.

 

슬픔을 이기기 위해 거꾸로 걷는 남자가 숙부의 차를 타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점점 나를 지치게 했고, 아 더 이상 못 읽겠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노쇠하여 죽은 남편의 시체 속에 본인을 꼬매 달라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요청하는 늙은 여인의 이야기가 나를 황당하게 했으며, 마지막 본인의 여생을 충동구매한 침팬지와 선조들의 고향인 포르투갈에서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를 접하며 리트머스 시험지의 색이 붉게 혹은 푸르게 변하듯 나의 감정도 점점 얀 마텔의 감성에 젖어들었다. 시작은 나름 흥미롭고 수월했으며, 1/3 지점에서는 책이 살짝 지겨워졌고, 2/3 지점에서는 더 이상 포기하기에는 내가 투자한 시간과 상상력이 아까웠으며, 그 지점 이후부터는 더 이상 손에서 책을 뗄 수가 없는 흡입력을 느꼈다. 그리고 책을 읽은 지 2주가 넘은 이 시점에도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곱씹어보며 주인공의 마음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저자는 독자들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나 보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그 자체가 인생일 수도, 궁극적 목표일 수도, 신일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이기에... 약 3개월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는 이런 책 안 읽겠다고 중간에 툴툴거리던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