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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어준 생각의 끈

검은 꽃

저자: 김영하

 

10년도 더 전 멕시코 여행을 다녀온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내 남편은 내게 그곳에서 한국인 박물관을 다녀왔노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박물관에는 한국인들이 1900년대 멕시코에 가서 움막 같은 곳에 살며 노예처럼 지낸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당시 난 멕시코에 당연히 한국 교민들이 오래전부터 있었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백 년 전에 그런 일들이 있었고, 한국인들이 노예처럼 살았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1900년 대면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기간인데 그때 멕시코 이민이 있었다는 것이 의아했고, 중고등학교 때 역사 수업에 집중을 안했던 것인지 나는 멕시코로 이민 간 역사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도 안 통하는 그 먼 나라에 가서 노예처럼 살았다는 한국 사람들의 상황이 나는 상상조차 되지도 않았다.

 

검은 꽃은 멕시코 아가베 농장으로 팔려간 천명 가량의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의 상상으로 생생하게 풀어나간 소설이다. 이름도 없이 시작한 고아 김이정 이야기를 중심으로 군인, 양반, 종교인, 농부 등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그려지고, 동시에 한국과 멕시코가 당면한 격변의 역사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변화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서글프고 우울하다. 그래도 다들 본인의 개인사를 어떻게든 짊어지고 살아가고 때때로 서로 돕거나 의지하며 그렇게 나아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어쩌다 살게 된 멕시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밥벌이를 하며 현지인들과 어우러져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

 

첫 장부터 엄청난 흡입력을 지닌 이 소설은 내게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방식으로 내 감정을 건드렸고, 이들 대부분의 삶을 관통하는 자본의 힘과 그 힘 때문에 좌지우지되는 그들의 인생이 서글펐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다른 모습의 노예이지만 자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일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했다. 왜 우리는 조화로운 삶이 아닌 착취하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일까...